귀환
아우스트로 다임러 ADS R의 기원은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오스트리아 비너 노이슈타트에서 ‘사샤‘라는 별명의 특별한 레이스카를 설계했다. 지난날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클래스 우승을 차지한 챔피언 사샤는 오늘 고향으로 돌아온다.
크랭크를 힘차게 돌리고 가속 페달을 살짝 밟으니 모두가 기다리는 사운드가 울려 퍼진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고 카페 주인은 테라스로 나와 구경한다. 오래된 건물 안의 사람들도 호기심에 찬 얼굴을 창문 밖으로 내민다. 누구나 이게 평범한 자동차에서 날 수 있는 굉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힘차게 울리는 이 소리의 출처는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100여 년 전에 설계한 아우스트로 다임러 ADS R의 수랭식 1.1L 4기통 엔진이다. ADS R은 현재 포르쉐 박물관에서 주행이 가능한 가장 오래된 모델이다. 크랭크를 돌린 얀 하이닥은 자동차 전문 관리인이자 올해 29세로 박물관 워크숍의 최연소 직원이다. 하이닥과 마이스터인 쿠노 베르너가 몇 달에 걸쳐 작업한 끝에 클래식 레이스카는 다시 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오늘 그들은 <크리스토포러스>를 위해 ADS R이 탄생한 오스트리아의 비너 노이슈타트로 이 차를 다시 데려간다.
이상주의자의 꿈
1920년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선구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45세였던 그는 빈에서 남쪽으로 60km 정도 떨어진 비너 노이슈타트에 있는 자동차 제조사 아우스트로 다임러의 총책임자였다.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대중들이 탈 수 있는 가볍고 저렴한 소형차를 대량으로 생산하려는 비전을 품었다. 당시 이미 유명한 설계자였던 포르쉐는 훗날 이뤄질 자동차 대중화를 수십 년 앞서 생각했다. 포르쉐는 의기투합할 알렉산더 요제프 그라프 콜로라트-크라코프스키를 만났다. 아우스트로 다임러의 출자자인 콜로라트의 별명은 ‘사샤(Sascha)‘였고, 영화 제작자이면서 열렬한 모터스포츠 팬이었다. 계획한 자동차를 생산하려면 아우스트로 다임러 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했는데, 그들은 이 프로젝트에 회의적이었다. 레이스에 관한 긍정적인 관심이 이사회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라고 확신한 포르쉐는 배기량 1100cc짜리 엔진을 얹기로 계획한 소형차 외에 레이스용 ADS R도 만들기로 했다. 레이스카의 명칭은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콜로라트의 이름을 따서 ‘사샤‘라고 지었다. 제작된 차는 무게가 598kg에 불과한 레이스카로, 앞으로 제작할 4인승 시리즈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네 대의 프로토타입은 1922년 시칠리아 마도니 산맥을 통과하는 험난한 도로 레이스인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첫선을 보였다. 레이스카는 경주에 참가하기 직전 완성되었다. 포르쉐 직원들은 차량이 이탈리아에서 눈에 띄어 도난당하지 않도록 기차로 운송하는 동안 네 대의 알루미늄 차체를 빨간색으로 칠했다. 또한 멀리서도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콜로라트의 제안에 따라 카드놀이 심벌도 붙였다.
그중 세 대는 1.1L 클래스에 참가했다. 프로토타입을 직접 운전한 콜로라트는 엔진 문제로 탈락했으며 다른 두 대는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1.5L 엔진이 달린 네 번째 사샤 레이스카는 더 강력한 오픈 클래스에서 경쟁을 펼쳤다. 사샤는 코스 주행 거리 432km, 커브 6000개, 최대 6.8도의 경사로를 거쳐 최고 속도 시속 144km의 기록과 함께 전체 순위 19위를 차지했다. ADS R은 이탈리아 언론의 찬사를 받았고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공개’한 내용도 더불어 화제가 되었다.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성능이었다. 사샤는 최대 5배 더 강력한 엔진이 달린 레이스카와 경쟁했지만 평균 속력은 불과 시속 8km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아우스트로 다임러 이사회도 성과를 알고는 있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로 사샤는 달리고 또 달려 52개의 레이스에서 22승을 거뒀다. 그런데도 이사회는 재정 문제와 인플레이션,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장 규모 등을 이유로 내세워 시리즈 양산을 반대했다. 결국 소수의 ADS R 프로토타입만 남긴 채 프로젝트는 끝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흔들리지 않았고 가볍고 경제적인 자동차에 대한 아이디어를 계속 추구해 나갔다.
드디어 집으로
2023년의 비너 노이슈타트. 태양이 환하게 비추는 헤렌가세 거리의 건물들은 보호받는 역사적 기념물이며 그 중 일부의 역사는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이닥이 가속 페달을 밟자 사샤의 바퀴가 100여 년 만에 이곳에서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 구시가지를 돌아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 주변으로 이동해 13세기 렉투름 타워의 문을 통과한다. 이는 과거에 비너 노이슈타트 사람들이 사샤가 지나가는 광경을 보고 즐거워했을 때의 모습과 비슷할 것이다. 이제는 아우스트로 다임러 공장 홀을 비롯한 포르쉐 기념물 중 많은 것이 남아있지 않지만, 페르디난트 포르쉐 링과 같은 도로가 역사적 유산을 기리고 있다.
하이닥은 오늘날 레이스카를 운전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사샤는 다양한 노면에 맞게 제작된 레이스카입니다. 실제로 접지력이 매우 크고 속도는 너무 빠르죠. 힘도 아주 강합니다.” 하이닥이 잠시 쉬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재미있습니다. 모든 진동을 느낄 수 있죠. 엔진이 작동하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파워 스티어링이 없어서 운전자의 힘과 감각이 중요합니다.” 고글도 반드시 써야 한다. 앞바퀴가 도로의 먼지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닥은 이 모든 상황을 즐긴다.“이런 환경에서 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큰 영광입니다.”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주는 교훈
그는 다시 레이스카에 올라탄다. 안전 벨트도 없고 조명 또한 없다(p20 박스 내용 참조). 운전석 옆에는 그 당시 레이스카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미캐닉용 비상 좌석이 있다. 페달 구성 역시 특이하다. 왼쪽에 클러치, 오른쪽에 브레이크, 그리고 가속 페달이 가운데에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에야 사샤에 관해 알아야 할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았습니다.” 워크숍 매니저인 쿠노 베르너가 말한다. “구동장치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할 때에는 그 당시 설계자처럼 생각해야 했죠.” 포르쉐 박물관이 소장한 역사적인 차는 700여 대가 넘지만, 사샤가 있던 때에 제조된 모델은 드물다. “예를 들어 케이블 브레이크는 요즘에 거의 없습니다. 동력 계통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엔진에 관해 잘 아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죠.“ 복원을 위한 일부 특수 공구를 제작하면서, 전문가들은 현재 포르쉐 DNA의 특징을 인지했다. “가벼운 알루미늄 구조와 낮은 무게 중심. 모든 포르쉐 스포츠카에 공통으로 드러나는 핵심 요소죠“라고 베르너가 설명한다. 당시 알루미늄은 지금보다 훨씬 비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성능을 높이기 위해 알루미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포르쉐와 끊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부활은 곧 시작이다
오후에 접어들자 갑자기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크랭크를 돌리고 차를 밀어봐도 소용이 없다. 팀 전체에 처음으로 긴장감이 돌지만, 베르너와 하이닥은 느긋하다. 몇 마디 말을 나눈 그들이 곧바로 작업을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1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새 익숙해진 레이스카의 소리가 들린다. “점화 플러그를 갈아 끼워야 했습니다”라고 베르너가 설명한다. “이런 오래된 차를 운행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극히 정상입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죠.” 베르너는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49세인 그는 포르쉐에서 27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이 프로젝트는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사샤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저에게 회사의 역사는 사샤 이후부터였죠. 하지만 역사를 탐구하면서 우리가 다른 차량을 통해 이미 익숙한 요소들을 발견하는 일은 꽤나 흥미롭습니다.” 이제 사샤는 다시 예전처럼 달린다. 무게는 598kg, 출력은 4500rpm에서 50마력이며, 오버헤드 캠샤프트를 갖춘 직렬 4기통으로 배기량은 1100cc다. 이번 경험이 어땠냐고 묻자 하이닥은 “꿈같은 일이죠”라고 답한다. “저희는 100년이 넘는 자동차를 소장한 박물관 워크숍에서일합니다. 그 중에서도 사샤는 핵심입니다. 정말 특별하죠.”
하이닥이 부루크가세를 지나 역사적인 도시 성벽을 따라서 마지막 바퀴를 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길가에 서 있는 베르너가 소감을 이야기한다. “저희 팀은 엄청난 노력 끝에 사샤를 고향으로 다시 데려왔습니다.” 이 복원 작업은 바이작 개발 센터의 동료, 은퇴한 직원, 그리고 외부 서비스 제공업체의 도움을 받아 진행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이건 그저 시작에 불과합니다”라고 베르너가 강조한다. 사샤는 앞으로도 계속 회사가 주최하는 활동에 참여하며 포르쉐 DNA의 진정한 근원을 알릴 것이다.
‘사샤’의 복귀
크리스토포러스>와 9:11 매거진을 위한 미디어 제작의 일환으로 ‘사샤’는 다시 비너 노이슈타트의 도로를 달렸다.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이 장소에서 레이스카를 설계한 지 100여 년 만이다. 아우스트로 다임러 ADS R은 요즘 안전 규정에 맞지 않아 일반 도로 위에서 달릴 수 없지만, 지방자치단체의 협조를 받아 촬영하는 동안 도로 일부를 임시로 차단하여 귀환이 성사되었다. ‘사샤’가 달리는 역사적인 순간에 시민들은 열광했다. 레이스카의 작동 모습을 직접 보고 직렬 4기통 엔진의 사운드를 직접 체험해 보고싶지 않은가?
‘사샤’의 귀환 영상은 9:11 매거진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