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의 끝없는 광기, 911 GT3

슈투트가르트 포르쉐는 언제나 독보적이고 독자적인 모습으로 기술력의 상징이 되어왔다. 그 중심에는 911이 있고, 그 중에서도 GT3는 엔지니어링에 대한 광기까지 보여주고 있다. 언제나 911의 변화에 기반하면서 포르쉐 모터스포츠의 발전하는 기술까지 담아내는 911 GT3를 포르쉐의 도시이자 포르쉐의 심장인 주펜하우젠에서 만났다.

   

해발 1,800m의 차가운 공기가 911 GT3의 엔진으로 끊임없이 빨려 들어갔다. 그만큼 911 GT3는 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9,000rpm, 그러니깐 노란 바늘이 3시 방향을 향해 힘차게 움직일 때면 스키 슬로프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던 이곳에서 356이 태어났고, 최초의 911도 탄생했다. 포르쉐가 도로에 즐비하고, 포르쉐의 오랜 공장과 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늘을 향한 조형물 인스퍼레이션 911이 우뚝 서 있다. 인스퍼레이션 911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그들의 역사적인 첫번째 주펜하우젠 공장 ‘Werk1’이 있고, 그곳에서 911 GT3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키를 건네받는 것보다, Werk1의 초소를 통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웠다. 이 곳은 포르쉐의 1급 보안시설이지만 워낙 관광객들이 불쑥 찾아오기도 하고 동양인 무리가 대뜸 911 GT3를 받으러 왔다고 하면, 나라도 그들을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다. 우린 독일어를 못했고, 공장 보안요원들은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다. 우리는 ‘미디어 프롬 코리아!’를 연신 외치며 결국 Werk1에 들어갈 수 있었고, 초소를 지나자마자 빗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시뻘건 911 GT3가 서있었다.

1999년 처음  등장한  911 GT3는  지금까지도  6기통 자연흡기 박서 엔진을  고수하고 있다.

카본 시트와 롤케이지:

카본 시트와 롤케이지:

“저 차다. 날개 봐, 날개!” 감출 수 없는 거대한 리어 윙이 우릴 가장 먼저 반겼다. 911 GT3를 상징하는 요소이자, 가장 보고 싶었던 리어 윙은 사진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다웠다. 자동차 부품으로 치부하긴 그 조형미가 눈부셨다. 또 911 RSR과 비교해도 더 견고하게 느껴졌다. 구조상의 발전도 있었다. 일반적인 윙은 브라켓이 윙을 떠받치고 있지만 911 GT3의 브라켓은 윙을 위에서 붙들고 있는 구조다. 그래서 윙의 아랫부분의 공기 흐름이 훨씬 개선됐다. 또 차체는 그 공기 순환을 더 극대화해줄 수 있는 덕테일까지 생겼다. 이런 변화로 인해 신형 911 GT3는 시속 200km에서 이전 모델보다 50% 증가한 다운포스를 발생시키고, 각도를 조절하면 최대 150%까지 다운포스를 높일 수 있다. 별드라이버만 있으면 손쉽게 윙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데, 총 4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911 GT3가 지향하는 바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911 터보가 모든 것을 갖춘 911이라면 911 GT3는 가장 극적인 911이다. 롤케이지가 기본으로 장착되는 양산차는 흔치 않다. 911 GT3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포르쉐가 FIA GT3 클래스에 참가할 레이스카를 제작하면서, 그에 따른 호몰로게이션 모델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흥미로운 점은 911 GT3는 언제나 911의 변화에 기반하면서 포르쉐 모터스포츠의 발전하는 기술까지 담고 있다는 것이다. 992가 그랬듯이 차체는 훨씬 더 넓어졌다. 911 GT3 최초로 더블 위시본 프론트 서스펜션이 적용됐다. 이런 구조적 변화로 인해 좌우 앞바퀴의 간격이 넓어졌고, 타이어의 단면도 더 넓어졌다. 이와 함께 뒷바퀴는 앞바퀴보다 1인치 더 커졌고, 타이어도 315/30 ZR21로 확대됐다.

주펜하우젠은 포르쉐의 도시다.

주펜하우젠은 포르쉐의 도시다.

“그리고 잘 알겠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타이어가 매우 미끄러울 거예요. 그 부분만 조심하면 될 것 같아요. 물론 비만 안오면 도로에 붙어 달릴 거예요. 그것도 매우 끈적하게요.” 미디어 시승차를 담당하는 도미닉 키텔은 차키를 건네며 말했다. 911 GT3의 리어 윙에 빗물이 조금씩 고이기 시작했다. 911 GT3에는 자연흡기 엔진만큼이나 희귀한 미쉐린 파일럿스포츠 컵2가 장착됐다. 현존하는 승용차의 타이어 중에서 가장 극단적이고, 가장 서킷 친화적인 타이어다.

슈투트가르트 인근은 하루 종일 비가 올 것이 확실해 보였다. 서둘러 이동해야 했다. 등받이 각도도 조절할 수 없는 버킷 시트에 몸이 파묻혔다. 옆구리부터 어깨까지 완벽하게 감쌌다. 시트에 앉는 게 아니라 시트를 입은 느낌이었다. 몸에 달라붙은 시트는 상체의 흔들림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을 태세였다. 911의 작고 앙증맞았던 기어 레버는 GT3답게 바뀌었다. 마치 수동변속기처럼 생겼다. 기어를 직접 움켜잡고 위아래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게 꽤 반가웠다. 

엔진의 떨림이 가깝게 느껴졌다. 롤케이지가 함께 떨리며 더 큰 진동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묵직한 가속페달에 발을 살짝 올리는 것만으로도 엔진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폐쇄적인 실내는 더욱 긴장감을 높였다. 911 GT3만의 숏기어는 여전했다. 기어비가 매우 촘촘해서 시속 40km 부근에서도 7단 기어를 넣을 수 있다. 파워트레인의 구성은 예전 모델과 같았다. 911에는 8단 PDK가 적용됐지만 911 GT3는 여전히 7단 PDK를 사용하고 있다. 제원의 숫자들만 보면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911은 눈에 띄게 엔진 출력이 높아졌고,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도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911 GT3는 고작 10마력 높아졌고, 최고속도도 그대로였다. 그런데도 911 GT3는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 랩타임을 20여초 가량 줄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911 GT3의 변화를 찾아야 했다.

911 GT3:

911 GT3:

“속도 무제한 구간이다.” 주변 차들의 속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8번 고속도로에 올라 슈투트가르트를 조금 벗어나니 빗방울은 잦아들었고, 아스팔트는 점차 본래의 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며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니 제한속도가 시속 130km 구간에서는 지루하기만 했던 7단 기어가 순식간에 3단으로 바뀌면서 911 GT3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전 세대 모델보다 최고출력은 고작 10마력 높아졌지만, 4.0리터 6기통 박서 엔진은 구조 자체가 달라졌다. 고회전이 훨씬 유리하게 발전했다. GT3 레이스카, GT3 컵카 등 포르쉐가 모터스포츠에서 사용하는 개별 스로틀 밸브가 적용됐다. 기존에는 거실에 놓인 단 한개의 에어컨에 의지했다면, 이제는 방마다 에어컨이 놓인 셈이었다. 덕분에 주구장창 높은 엔진회전수를 유지하며 달려도 부담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 차의 한계 속도 부근에서도 엔진의 반응은 둔해지지 않았다. 낮은 속도에서의 순발력이 시속 250km를 넘어도 유지됐다. 속도무제한 아우토반은 911 GT3에게 놀이터 같았다. 단숨에 시속 300km까지 높이고, 급격하게 속도를 줄이는 과정이 너무나 평온하게 진행됐다. 

땅 위를 달리고 있을 뿐 속도는 작은 비행기와 같았다. 우리는 빠르게 남쪽으로 이동했다. 300km를 넘게 달렸지만, 아직 기름은 절반이나 남았다. 통풍 시트나 헤드업 디스플레이 따위의 편의장비보다는 90리터의 대형 연료 탱크가 훨씬 더 효용 가치 있게 느껴졌다. 어느새 오스트리아 국경 인근까지 왔고, 높은 산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몸이 즐거워지는 공간:

온몸이 즐거워지는 공간:

제원의 숫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911 GT3는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 랩타임을 무려 20여초 가량 줄였다.

트랙 모드는 911 GT3의 공격성을 통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좀처럼 불안한 모습은 없었다. 커다란 윙은 뒷바퀴를 지면으로 꾹꾹 눌렀고, 뜨거워진 타이어는 끈적하게 노면을 붙잡았다. 엔진 마운트도 위치가 달라졌고, 롤케이지는 차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더블 위시본 프론트 서스펜션은 911 GT3가 더 안정적이고 날렵하게 방향을 틀게 했다. 또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뒷바퀴가 슬며시 방향을 틀면서 더 재빠르고, 부드럽게 코너를 돌게 했다. 차의 무게는 이전 세대와 비슷했지만, 카본 보닛과 경량 유리 등으로 무게 중심을 더 아래로 낮췄다. 덕분에 코너에서의 움직임은 더 정교했고 유연했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을 뿐 지치지 않았다. 브레이크뿐만 아니라 911 GT3의 모든 요소는 내구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있었다.

포르쉐는 언제나 독보적이고 독자적인 모습으로 기술력의 상징이 되어왔다. 그 중심에는 911이 있고, 그 중에서도 GT3는 엔지니어링에 대한 광기까지 보여주고 있다. 포르쉐도 전기차를 만들고 있지만 911 GT3를 보면 그들은 여전히 내연기관에 더 많은 애정을 품고 있고, 늘 그렇듯 그것으로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것처럼 느껴졌다. 911의 라이벌은 911뿐이라고, 911 GT3는 어떤 스포츠카와도 닮지 않았고 어떤 스포츠카도 보여주지 못할 경이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온종일 911 GT3와 씨름하며, 미처 제대로 보지 못했던 독일 남부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중턱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평화롭기만 했다. 

김상영(모터그래프 기자)
김상영(모터그래프 기자)

연료 소비

포르쉐 911 GT3 (유럽 기준)

WLTP*
  • 13.0 – 12.9 l/100 km
  • 294 – 293 g/km
  • G Class

포르쉐 911 GT3 (유럽 기준)

연료 소비
복합 연비 (WLTP) 13.0 – 12.9 l/100 km
복합 CO₂ 배출량 (WLTP) 294 – 293 g/km
CO₂ class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