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칸 4S와 함께한 350km
포르쉐의 첫 전기차, 타이칸 4S 시승 행사가 강원도 고성에서 열렸다. 해안도로에서 한가롭게 달릴 줄 알았다. 잘못 짚었다. 고속도로부터 와인딩까지, 350km짜리 코스가 기다렸다. 그래서 실망했냐고? 전혀. 오히려 타이칸 4S의 진면모를 진하게 느낀 시간이었다. 포르쉐의 저력 또한.
호젓하게 달릴 거라 생각했다. 시승 장소가 고성이었으니까. 고성은 강원도에서도 고즈넉한 지역이다. 한가로운 해안도로를 지중해 휴양지처럼 우아하게 달리려나. 청정지역인 고성과 친환경 전기차의 조합도 어울렸다. 느긋한 마음으로 고성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단단히 착각했다는 걸 알았다. 드라이빙 코스가 유유자적, 이런 단어와 거리가 멀었다. 총 코스 길이 350km. 5시간 동안 총 7코스를 거쳐야 한다. 고속도로부터 국도, 지방도, 해안도로까지 코스가 화려하다. 특히 업힐, 다운힐로 채운 와인딩 코스가 세 개나 포진해 있다. 구룡령부터 운두령, 대관령까지 범상치 않은 고갯길이다. 코스가 본격적이다.
느긋한 마음은 코스 브리핑을 듣는 순간 말끔히 지워졌다. 타이칸 4S는 전기차지만, 역시 포르쉐가 앞에 붙었다. 코스만 봐도 시승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밀도 있게 타이칸 4S를 즐겨보라는 의도다. 의도는 또 있다. 총 시승 코스 350km에 담긴 뜻이다. 국내에서 인증받은 타이칸 4S의 완충 시 주행거리는 289km다. 시승 코스는 350km인데? 간단한 셈법으로도 이상하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얘기다. 인증 거리보다 더 달릴 수 있다고, 직접 확인하라는 의도. 행사인 만큼 여러 번 확인했을 테다. 그 거리의 안정권이 350km인 셈이다. 확인할 게 하나 더 늘었다. 괜히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행사를 준비한 포르쉐 코리아의 각오가 느껴진다. 제대로 느껴보라고, 조목조목 따져보라고. 각오가 아닌 자신감이려나.
르네블루바이워커힐 앞에 타이칸 4S가 도열해 있다. 타이칸 터보 S는 포르쉐월드로드쇼 행사 때 접한 적이 있다. 그땐 트랙에서 주행했다. 트랙에선 아무래도 휘몰아치듯 시승한다. 천천히 음미하긴 힘들다. 그래서일까. 가공할 가속력과 포르쉐 일렉트릭 스포츠 사운드의 여운만 남아 있다. 일상에서 탈 때 느낌을 종합적으로 알긴 힘들다. 이번에는 다르다. 공도에서 다양한 길을 경험한다. 실제로 타이칸 4S를 산 사람이 달릴 만한 길이다. 타이칸 4S를 보다 꼼꼼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럴 기대감으로 고성까지 왔다. 이제 확인할 시간이다.
타이칸 4S 는 일상의 편안함을 유지한 채 스포츠성을 마음껏 발휘한다.
시트에 앉아 스티어링 휠을 잡는다. 포르쉐의 느낌 그대로다. 지면과 가까운 낮은 시트와 밀도 있는 스티어링 휠 가죽 질감. 타이칸 4S의 외관 실루엣처럼 실내 첫 느낌도 포르쉐를 탄다는 걸 환기한다. 물론 새로운 변화도 쉽게 눈에 띈다. 외관의 헤드램프처럼 디지털 감각이 돋보인다. 매끈하게 휜 디지털 계기반은 다시 봐도 탐스럽다. 물리 버튼을 집어삼킨 커다란 세로형 디스플레이 역시. 비상등 빼고는 센터페시아 쪽 버튼이 모조리 사라졌다. 공조기 방향까지 디스플레이에서 터치로 조작하니 어련할까. 실내 구성은 포르쉐 같은데 또 완전히 새롭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하기. 전통 자동차 브랜드의 고민을 과감하게 돌파했다.
주행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바로 체감했다. 생각보다 편하다. 그러면서 깔끔하다. 하체 감각 얘기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위해 국도를 달렸다. 노면이 고르지 못한 곳이나 도로 이음새, 방지턱을 지날 때 엉덩이가 불편한 느낌이 전혀 없다. 딱딱하게 긴장한 하체 감각은 타이칸 4S에서 찾을 수 없다. 잔동작도 없다. 깔끔하게 도로 상태를 전달한다. 전달만 한다. 유별나게 반응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걸러낸다. 절도 있게 움직이면서 편안함을 유지했다는 뜻이다. 첫인상이 부드럽다. 문 네 개짜리 자동차다운 품이다.
부드러운 첫인상은 곧 매끄러운 박력으로 전환된다. 고속도로에서 가속페달을 제법 깊게 밟을 기회가 생겼으니까. 포르쉐 일렉트릭 스포츠 사운드가 실내에 울려 퍼지면 어김없이 차체는 워프(Warp)하듯 튀어나갔다. 일련의 준비 과정 없이 순식간에. 타이칸 터보 S에서 느낀 공상과학 같은 가속 감각은 타이칸 4S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전기차 특유의 정적과 독특한 사운드가 결합된 발진 감각은 확실히 색다르게 짜릿하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타이칸 4S의 흐트러짐 없는 움직임 덕분이기도 하다. 슈우웅, 소리 내며 도로를 접어버리듯 가속하는 재미에 가속페달 밟는 발이 바빠진다. 사운드는 스포츠 배기음처럼 크고 작게 조절할 수 있다. 물론 이왕이면 크게. 가속페달 깊게 밟다보니 주행거리에 신경 써야 하나 싶었다. 잠시 떠올렸지만 이내 잊었다. 누구든 사면 이렇게 탈 테니까. 달려야 할 거리가 350km나 된다는 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본격적인 와인딩에 접어든다. 포르쉐다운 면모가 발휘되는 구간이다. 코너 몇 개 지나지 않아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직접 겪고 있는데도 왠지 믿기지 않은 감각이어서.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는 횟수도 늘었다. 잘 돌아나갈 거라고 의심하진 않았다. 그동안 포르쉐 모델을 시승하면서 각인된 스포츠성에 관한 믿음이 있다. 타이칸 4S라고 다를까. 전기차는 배터리가 바닥에 깔려 무게중심이 낮다. 낮은 무게중심은 스포츠성을 강화한다. 이런 장점도 더했으니 와인딩이 즐거울 거라고 기대했다. 기대 이상이다. 놀라운 감각으로 코너를 돌아나간다. 흐트러짐 없이 코너에서 선을 그려나갈 때면 흡사 레일 위를 달리는 기분이다. 전기차 특유의 고요함 속에서 독특한 사운드를 내며 스르륵, 움직이니까. 이리저리 길이 굽이치는 와중에 도로에 밀착해 움직이니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다. 트랙처럼 빨리 달리지 않았기에 더 섬세하게 느껴진다. 코너를 하나씩 지나칠 때마다 탄성이 반사적으로 터져 나온다. 고개도 갸웃거리길 여러 번. 와인딩 내내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움직임이, 이야, 참.
마법 같은 와인딩이 끝나고 주행 가능 거리를 확인했다. 와인딩 진입 전보다 오히려 늘었다. 내리막에서 회생제동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렇게 즐겼는데 주행거리가 늘었다는 점은 타이칸 4S에겐 중요하다. 스포츠카는 주로 와인딩 코스에서 즐기잖나. 타이칸 4S를 타는 사람에겐 와인딩이 여러모로 즐거워진다. 고갯길을 내려와 해안도로로 접어든다. 다시 차체에 편안함이 퍼진다. 처음에 느낀 그 부드러운 질감. 와인딩까지 경험하고 보니 이 편안함이 더 놀라울 수밖에 없다. 그만큼 서스펜션이 극과 극의 상황을 유연하게 오간다는 뜻이다. 타이칸 4S에 적용한 PASM(Porsche Active Suspension Management)의 능력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포르쉐가 만든 전기차답다는 건 이런 의미가 아닐까. 단지 전기모터의 즉각적인 반응만이 전기 스포츠카의 전부가 아니다. 포르쉐는 타이칸 4S의 하체 감각으로 증명한다. 종합적인 거동으로 알게 한다. 스포츠카 만들어온 관록이 전기차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느덧 해가 기울고 날이 어둑해진다. 마지막 코스를 달릴 차례다. 잊고 있던 주행 가능 거리를 확인했다. 앞으로 달려야 할 거리는 62km. 남은 주행 가능 거리는 112km. 도착해서도 50km나 더 달릴 수 있다. 역시 충분하다. 예상보다 더. 주행 가능 거리도 넉넉하니 마음 편하게 운전하며 오늘의 시승을 되짚어본다. 타이칸 4S는 포르쉐에 어떤 의미일까. 전기차 시대를 맞이하는 포르쉐의 답이자 전략. 타이칸 4S는 포르쉐 라인업에서 전에 없던 위치를 차지한다. 첫 전기차라는 특이점만 있는 게 아니다. 스포츠카이면서 뒷문도 있다. 그렇다고 파나메라처럼 크지도 않다. 스포츠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편리성도 챙긴다. 포르쉐 라인업을 더 촘촘하게 하는 모델이랄까. 무엇보다 독특한 감각으로 달리는 재미를 선사한다. 전기차 시대에도 외계인 운운하는 농담이 통할 정도로. 타이칸 4S가 그 시작이다.
연료 소비
타이칸 4S (Performance Battery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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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 20.4 kWh/100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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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g/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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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lass
타이칸 4S (유럽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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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 19.8 kWh/100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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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g/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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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