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시작

아이디어와 혁신. 정확히 90년 전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포르쉐를 대표하는 특징이다. 당시 페르디난트 포르쉐와 직원들은 고객사의 주문을 받아 획기적인 프로젝트를 발전시켰다. 포르쉐 엔지니어링은 이러한 전통을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으며 지능적으로 연결된 미래의 자동차를 개발한다.

   

어려운 시절에 홀로서기 위해서는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대공황 시대에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슈투트가르트에 설계사무소를 창업하면서 용기와 자신감을 한껏 증명했다. 1931년 4월 25일 명예 공학박사 F. 포르쉐의 이름으로 크로넨슈트라세 24번지에 소재지를 둔 유한책임회사 상업 등기를 완료했다. 엔진과 자동차 제작을 위한 설계와 자문을 하는 회사였다. 설계사무소는 오늘날 포르쉐 주식회사의 전신이고, 2001년부터 포르쉐 엔지니어링 그룹이 운영하는 포르쉐 고객 개발의 시초다.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세운 설계 회사는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독립적인 개발 업체가 되었고 이후 국제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자동차 역사에서 위대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55세 나이로 슈투트가르트에 자신의 기업을 뿌리내리기 전,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다임러 모토렌 게젤샤프트(1926년부터 다임러 벤츠 AG)를 포함한 자동차 업체에서 25년 동안 선구적인 모델 개발을 책임졌다. 그는 오스트리아 슈타이어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 뒤 자동차 중심지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왔다. 1931년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숙련된 기술자와 엔지니어를 끌어모았다. 당시 최고로 꼽히던 사람들이었고, 직장을 옮긴 이도 있었다. 수석 엔지니어 칼 라베는 선임 설계자로서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오른팔이 되었다. 변속기 대가 카를 프뢸리히와 엔진 전문가 요제프 칼레스도 있었다. 차체 개발자 에르빈 코멘다와 엔진 전문가 프란츠 자버 라임슈피스도 합류했다.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아들 페리 포르쉐도 동참했다. 어릴 때부터 페리 포르쉐는 아버지의 창조력에 영감을 받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새로운 지평을 여셨어요.” 훗날 페리 포르쉐가 말했다. “언제나 시대를 앞서는 자동차를 창조해내셨죠.”

“아버지는 언제나 새로운 지평을 여셨어요. 언제나 시대를 앞서는 자동차를 창조해내셨죠.” 페리 포르쉐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설계사무소를 열었을 때부터 이미 상당한 실력을 갖췄지만, 대공황 시기에 일감을 따내기는 쉽지 않았다. 19명 직원에게 숙소와 음식 제공으로 임금을대신할 때도 많았다. 

첫 번째 주문은 켐니츠 지역을 본거지로 하는 반더러였다. 포르쉐 팀은 작센주 제작 업체 반더러를 위해 직렬 8기통 엔진과 완전한 중형 세단을 개발했다. 이후 W21/22 시리즈가 된 차다. 다른 업체를 위한 섀시와 조향 부품 개발 주문도 뒤를 이었다. 포르쉐 창업자의 아이디어에 고무된 능숙한 팀원들이 자동차 기술 전반을 폭넓게 다루는 운영 방식이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역사학자 볼프람 퓌타는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펜대만 굴리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기술자였죠. 끊임없는 열정을 보이며 항상 최적의 기술 해법을 찾았어요.”

1933년 초, 작센주에 막 설립된 아우토 우니온은 변혁의 불씨로 작용했다.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아우토 우니온으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레이스카를 설계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수년 동안 논의가 오간 끝에 맺은 성과였다. 당시 자동차 설계사무소 한 곳이 수행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새 그랑프리 규정은 레이스카 중량을 750kg으로 한정하고, 그 밖의 기술적 제한은 거의 두지 않았다. 포르쉐의 P를 붙여 ‘P-자동차’라고 부른 초기 모델은 천재적인 작품이었다. 아우토 우니온의 전설적인 ‘은빛 화살’에는 16기통 엔진을 얹었는데 운전자 바로 뒤에 배치해 무게 배분을 최적화했다. 오늘날에도 레이스카에 널리 쓰는 구조다. 모터스포츠는 기업 포르쉐의 “초고속 성장을 위한 초석”이었다고 역사학자 퓌타는 설명한다. 포르쉐 기업 역사에서 이러한 위탁 개발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지금도 모터스포츠는 포르쉐 브랜드의 핵심 요소다. 

늘 비전을 추구하는 설계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두 번째 핵심 프로젝트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1932년 말 설계사무소는 모터사이클 제작업체인 췬다프의 주문을 받아 소형차 타입 12 개발에 착수했다. 페르디난트 포르쉐에게 이 임무는 수년 전부터 마음을 사로잡은 분야를 본격적으로 다뤄 보는 계기였다. 1920년대 초반부터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이미 소형차를 설계했었고, 많은 이들이 쉽게 살 수 있는 작고 가벼운 모델을 꿈꾸어 왔다. 넉넉한 공간을 갖추고 편안하고 힘도 충분해야 했다. 췬다프 요청으로 포르쉐가 만든 타입 12는 엔진을 뒤에 배치한 유선형 형태로 VW ‘비틀’로 알려진 폭스바겐의 초기 형태로 보인다. 췬다프는 하지만 경제공황 여파로 해당 모델의 시리즈 생산을 포기했다. 포르쉐 설계사무소는 NSU를 위해 완전히 비슷한 특징을 지닌 타입 32를 개발했다. 

초기 고객 개발

초기 고객 개발

The Porsche Type 32 for NSU in front of Kronenstraße 24 in Stuttgart.

소형차 프로젝트는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제국자동차산업협회로부터 국민차 설계와 제작을 주문받은 1934년에 다시 이어졌다. 국민차는 현대적인 유선형 차체에 좌석 네 개를 갖추고 4기통 복서 엔진을 뒤에 배치했다. 이 엔진 배치 원칙은 훗날 수백만 대가 팔린 비틀에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포르쉐 레이스카를 위한 표준이 됐다.

설계사무소는 도면 작업을 주로 했는데, 국민차 의뢰를 받은 후에는 제작과 시험 분야로 업무 영역을 넓혔다. 초기 프로토타입은 슈투트가르트 킬레스베르크 힐에 있는 포르쉐 저택 차고에서 탄생했지만 곧 더 많은 공간이 필요했다. 1937년 회사는 슈투트가르트 주펜하우젠 지역에 3헥타르 부지를 사들여 첫 번째 공장을 세웠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주펜하우젠 공장은 가문의 이름을 딴 첫 스포츠카, 포르쉐 356의 산실이 되었다. 고객사를 위한 개발 업무는 이후 수십 년간 포르쉐의 성공을 견인했다. 

1961년 페리 포르쉐는 바이작에 실험 부지를 위한 초석을 깔았다. 초기에는 주로 차대 실험용으로 사용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풍동, 충돌 실험 장치, 엔진 검사대, 배기가스 테스트센터 등이 들어섰다. 자체 자동차 부문뿐만 아니라 고객사의 수준 높은 주문을 위해 포르쉐는 지금도 이곳 설비를 사용하고 있다. 

1951년 주펜하우젠

1951년 주펜하우젠

Ferry Porsche and his father Ferdinand in front of an engineering drawing of the VW Beetle.

포르쉐는 1981년 항공기 제작사 에어부스와 함께 여객기에 쓰일 미래형 콕핏 레이아웃을 개발했다. 아날로그 장비 대신 모니터가 최초로 장착됐다. 1983년 포르쉐에 또 다른 획기적인 개발 요청이 들어왔다. 영국의 맥라렌 레이싱팀에서 F1을 위한 엔진을 원했다. 맥라렌 MP4를 위한 TAG 터보 엔진은 1.5L 배기량에 최대 1,000마력 성능을 냈다. 맥라렌은 이 엔진으로 F1에서 세 번이나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얻었다. 

중국 시장을 위한 실용적인 국민차로 개발한 콘셉트카 C88에도 비전을 담았다. 포르쉐는 1994년 베이징에서 세 가지 비전을 공개했다. 저렴한 2도어 모델, 표준 모델, 고급형 4도어 노치백 모델이다. 단순한 생산 공정, 높은 품질 표준, 우수한 안전성을 개발 목표로 삼았다. 

2001년 바이작 개발센터에 포르쉐 엔지니어링 그룹이 설립됐다. 엔지니어들은 혁신적인 프로젝트로 끊임없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슈투트가르트의 작은 설계사무소는 지금 거대한 표준이 되어 이어지고 있다. 독일과 체코, 루마니아, 이탈리아, 중국에 1,7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포르쉐 엔지니어링은 다방면의 엔지니어 서비스 업체로 명성이 높다. 고객사는 폭스바겐 그룹의 브랜드 및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는 물론 운송, 타 분야 기업들도 있다. 포르쉐 엔지니어링 전문가들은 미래 지향적 자동차 개발을 넘어 새로운 기능 및 소프트웨어 개발, 디지털 분야도 다루고 있다. 업무 영역은 콘셉트, 설계, 프로토타입 개발, 시범, 최종 설계, 조달, 물류에서 제작까지 아우른다. 지속가능하고 환경적이며 효율적인 업무는 기업 정체성의 핵심이다. 90년 전부터 성공을 가져 온 전통이다.

Manfred Schweigert
Manfred Schweigert

연료 소비

타이칸 터보 S (유럽 기준)

WLTP*
  • 23.4 – 22.0 kWh/100 km
  • 0 g/km
  • A Class

타이칸 터보 S (유럽 기준)

연료 소비
전기 소모량 복합 (WLTP) 23.4 – 22.0 kWh/100 km
복합 CO₂ 배출량 (WLTP) 0 g/km
CO₂ class A